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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독서 기록]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 - 오스카 와일드

by soobang 2025. 7. 22.

작가 소개: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미학주의 문학의 대표자입니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는 철학 아래, 예술이 도덕이나 사회적 규범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유의 위트와 지적 도발을 즐겼던 와일드는 당대 빅토리아 사회의 도덕적 위선을 정면으로 비판했고, 성 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 속에서 스캔들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1890년, 와일드는 미국 문예지 『립핀컷 매거진』에 자신의 유일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하며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지나치게 퇴폐적이며 동성애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은 이 작품은 와일드 문학 세계의 정점이자, 시대를 앞선 문제작으로 평가됩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은 1890년 초판1891년 개정판(책자 출간본)이 서로 다릅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분량의 차이를 넘어서, 작품의 주제, 인물 묘사, 서술 방식, 검열의 흔적에까지 영향을 미친 중요한 문학적 사건입니다.

 

줄거리

젊고 아름다운 귀족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배질 홀워드의 모델이 됩니다. 배질은 도리언에게 강한 매혹을 느끼며, 그의 순수함과 미에 집착합니다. 배질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은 쾌락주의 철학을 주입하며 도리언에게 “쾌락을 좇되 후회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헨리의 영향력 아래, 도리언은 외모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자신의 모습은 변치 않고 초상화만 늙기를 바라는 소원을 내뱉습니다.

 

곧 그는 무대 배우 시빌 베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가 사랑에 감정적으로 몰입해 연기를 망치자 냉정하게 버립니다. 그날 밤, 도리언은 초상화 속 얼굴에 첫 주름이 생겼음을 목격하고, 자신의 소원이 실현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이후 시빌은 목숨을 끊고, 도리언은 죄책감을 느끼기보다는 쾌락의 길을 택합니다. 그는 점점 타락한 생활에 빠져들고, 그에 비례해 초상화는 점점 더 추악하게 변합니다.

 

도리언은 세월이 흘러도 외적으로는 젊음을 유지하지만, 그의 이름은 사회에서 스캔들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죄와 부패를 초상화 뒤에 감춘 채 살아갑니다. 화가 배질이 이를 걱정하며 양심의 회복을 요구하자, 도리언은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고는 충동적으로 그를 해칩니다. 그것을 은폐한 도리언은 결국 죄책감과 공포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그림을 파괴하려 칼을 들이댑니다. 하지만 그 순간 오히려 자신이 죽게 되고, 사람들은 늙고 흉측한 시신 옆에서 젊고 아름다운 초상화를 발견합니다.

 

 

시사점

1890년 초판은 인간의 도덕적 타락을 보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도리언의 급격한 변질과 성적·도덕적 방종은, 당대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배질이 도리언에게 품은 애정의 묘사는 당시 금기시된 동성애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초상화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서, 자기기만과 죄의식의 시각적 구현물이 되며, 독자는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자기파괴성을 직접 마주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사회가 감추고자 했던 욕망과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도덕의 허위성과 예술의 자유 사이의 갈등을 날카롭게 부각시킵니다. 와일드는 이 소설을 통해 예술이 반드시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문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했으며,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19세기 말 영국 사회에서 강력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입니다.

 

총평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초판은 시대의 도덕적 감수성과 직접 충돌한 도발적 실험작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와일드의 문학적 용기와 문제의식,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재조명되며, 이 작품은 미학주의와 심리소설, 고딕 전통의 접점에 선 고전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초판은 검열되지 않은 채 도리언의 타락과 자기파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예술이 무엇을 묘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범위를 확장시킨 텍스트로 의미가 깊습니다.

 

와일드의 이 문제작은 오늘날까지도 예술과 윤리, 자아와 위선, 욕망과 도덕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으며, ‘보이는 것’과 ‘감추어진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검열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날것의 형태 그대로의 초판은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정직한 ‘거울’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